[기획] 여성에겐 모든 기업이 한샘이다

‘한샘 성폭력 사건’으로 드러난
‘강간문화’의 민낯

△ 기업 <한샘> ⓒ한샘 홈페이지

   지난 10월 29일, ‘한샘 성폭력 사건’ 피해경험인이 ‘네이트판’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피해경험을 공론화하면서 ‘직장 내 성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피해경험인은 해당 글을 통해 작년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일어난 3번의 성폭력을 폭로했다. 그 글은 많은 이의 분노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다른 직장 내 성폭력 문제까지 수면 위로 떠올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도 11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해 발언했다. 문대통령은 성폭력 사건 이후 적절한 대응이 이루어질 수 있는 직장 문화 정착을 강조하였으며 피해 사실을 신고할 수 없는 직장 내 분위기에 대해서 공공기관장이나 부서장에게 엄중한 책임을 추궁할 것을 경고했다.

   그러나 문대통령의 바람과 현실은 달랐다. 실제 사건의 진행 과정에선 기업 대처, 언론 보도, 여론 형성까지 수많은 2차가해와 폭력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 기업의 잘못된 대처: 사건 왜곡 및 축소

   한샘 법무팀은 자체 안내문을 통해 "2월 3일, 여직원이 합의 하 성관계를 맺었고 형사고소 역시 취하하였기 때문에 합의하에 관계했다는 증거가 있으므로 남직원은 해고조치를 철회하고 정직 3개월을, 여직원은 허위보고에 대해 각 징계를 내림" 이라고 사건을 공지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합의 하에 관계를 맺지 않았으며, 당시 형사고소를 취하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때문에 사실이 아닌 부분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안내문은 전혀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공지되었다.

   기업의 잘못된 대처는 이 뿐만이 아니다. 한샘은 기존 피해 경험 진술서를 파기하고 가이드라인이 정해진 새로운 진술서 작성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사람 인생 망칠 일 있느냐. 가해자가 (피해자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 "무고죄로 역고소 당할 수 있다", "경찰이 수사 들어오면 귀찮아지니 둘 다 해고해도 문제될 일 없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었다."며 피해자를 회유하고 협박했다. 압박감을 느낀 피해자는 결국 가짜 진술서와 하소연을 적은 글을 동봉하여 보냈다.

   ■ 언론의 잘못된 보도: 부족한 젠더의식

   채널A는 11월 5일 한샘 성폭력 사건을 다룬 뉴스에서 5초가량 범행 장면을 선정적으로 연상시키는 재연 장면을 굳이 보여줌으로써 성폭력 사건을 자극적으로 보도했다.

   여성 가족부와 한국 기자협회, 여성 아동 폭력 피해 중앙지원단이 만든 "성폭력 사건 보도수첩"은 "영상보도의 경우 성폭력 사건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자극적인 자료화면을 넣거나, 범행 내용을 선정적으로 재연하여 영상화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항을 기사 작성 및 보도 시 주의사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성폭력 사건 관련 보도에서 선정적, 자극적 장면을 부각하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흐릴 뿐 아니라 해당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으며, 비슷한 경험을 가진 피해자들에겐 트라우마 트리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포털검색사이트에 한샘을 치기만 해도 "한샘녀", ‘한샘 여직원’과 같은 연관검색어가 뜬다. ‘나영이 사건(조두순의 아동성폭행 사건)’, ‘트렁크녀 사건(김일곤이 여성을 납치 살해한 뒤 자동차 트렁크에 유기한 사건)’, ‘대장내시경녀 사건(대장내시경 중 여성 고객들을 성추행한 남의사가 구속된 사건)’ 등 성범죄 보도에서 여성은 피해자임에도 ‘OO녀’ 등으로 끊임없이 ‘대상화’된다.

   여기에 성범죄에 대한 고찰이나 사회시스템에 대한 반성, 그리고 근본적인 대책에 대한 고민은 없다. 기사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한 상업주의 언론이 만들어낸 자극적 보도만이 존재한다. 이 같은 보도는 대중의 관심을 끌 수는 있어도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우리 사회 곳곳의 ‘강간문화’

   위의 기업과 언론이 대처한 일련의 과정은 모두 ‘문화’에 의한 폭력이다. 즉, 성폭력 문제는 ‘권력’에 의한 폭력인 동시에 공동체 ‘문화’에 의한 폭력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강간문화(rape culture)’가 그 핵심이다.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 따르면 강간 문화는 ’강간이 만연한 환경,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을 가리킨다. 위 사건에서 상급자 및 연장자인 남성 가해자가 성폭력을 저지른 것, 기업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성폭력이라는 범죄를 사생활로 치부한 것, ’가해남성이 피해자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며 가해자 중심주의의 논리를 펼친 것, ’무고죄로 역고소를 당할 수 있다‘며 피해자를 위협한 것, 언론이 기사의 이미지나 서술을 자극적으로 묘사한 것, 동료들이 공동체에게 피해를 끼쳤다며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비난하는 것 모두 강간 문화에 속한다.

   ■ 직장 내 성폭력 실태

   언급된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다시피 성폭력은 성차별적 조직문화나 권력관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직장 또한 강간문화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여성가족부의 <2015년 성희롱 실태 조사>에 따르면, 설문의 남성 응답자들은 성희롱을 외모나 성적매력, 연애감정 등과 관련되는 것으로 혼동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사고방식도 강간문화, 남성 중심적 문화라고 할 수 있다.

△ (좌)성희롱 피해자 및 행위자의 권력 분포 / (우)성희롱 피해 대처방법과 그 이유

   앞서 말했듯 성폭력은 ‘권력’에 의한 폭력인 동시에 공동체 ‘문화’에 의한 폭력이기 때문에 직장 내에서도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기 마련이다. 여성가족부의 <2015년 성희롱 실태 조사>를 기반으로 권력 측면과 문화 측면을 살펴보자면, 권력(직급의 위계 관계뿐만 아니라 성별과 연령 등의 위계를 복합적으로 이름)의 경우 성희롱 피해자는 대체로 여성, 2-30대, 비정규직 종사자였으며, 성희롱 행위자는 남성, 상급자인 경우가 가장 높았다. 문화의 측면에서는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78.4%가 성희롱 사건을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했는데, 이 중 여성 피해자들은 그이유로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라고 가장 많이 응답하였다.

   ■ 다른 목소리를 불러내는 목소리: 말하기 운동

   이러한 강간 문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피해 사실을 수면 위로 떠올리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말하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ㅇㅇ계 내 성폭력’ 운동이나 미국의 ‘#METOO’ 운동이 그러하다.

   위와 같은 말하기 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피해 증언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 했던 피해자들이 비슷한 피해서사에 본인의 경험을 투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뮤리엘 루카이저는 수많은 여성들의 시간과 몸의 서사에 폭력과 차별이 배어있고, 이를 말하는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들을 불러낼 거라고 말한다. 이 과정이 비로소 성폭력을 성폭력으로 인지할 수 있게 만든다.

   ■ ‘한샘 성폭력 사건’이 보여주는 성폭력의 현주소

   공동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많은 경우에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해당 공동체를 떠난다. 논리적으론 가해자가 공동체를 떠나는 게 옳다고 여겨지지만, 강간문화가 만연한 사회에선 피해자가 공동체를 떠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번 ‘한샘 성폭력 사건’에서 역시 피해경험인이 회사를 떠났다. 피해자 측 변호인 김상균 변호사를 <뉴스1>에서 취재한 바에 따르면 피해경험인은 공론화 이전부터 직장 내 퍼진 소문 탓에 심적으로 힘들어했으며, 자신의 일로 인해 기업의 이미지가 악화되고 동료 직원들의 피해가 커진다고 생각해 온라인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처럼 ‘한샘 성폭력 사건’은 이처럼 권력과 문화가 결합된 사내 성폭력 문화의 현주소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만약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

라는 뮤리엘 루카이저의 명언이 있다. 아직도 털어놓지 못 한 피해 경험이 한국 사회 곳곳에 켜켜이 쌓여있다. 한국 사회의 변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문화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피해자에게 조심하라고 말하는 일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하지 말라고 말하는 일이다.

  • 웹마

    18-01-01 03:48:16

    #수정사항 : ‘강간문화(rape culture) 부분에 '추가하였습니다.

    문이진

    18-01-22 09:44:11

    고맙습니당~

    졔졔

    17-12-25 02:46:15

    문단별로 잘 정리되어 있네요. 무엇보다 '강간'이라는 한 사건보다 '강간문화'전체에 주목한 보도에 감사합니다. 대부분의 언론보도형식이 한샘사건 하나에만 집중되고 있는데, 사실 이 문화가 한샘이란 기업뿐만아니라 여성의 삶 전체에 녹아있다는 실상을 기사 제목에서부터 너무 잘 표현해 주신 것 같아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채한별

    17-12-24 16:16:00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