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등 8개국, ‘간성(intersex·間性)’을 ‘제3의 성’으로 인정

지난 2월 국내 간성 단체 출범,
제도 보완 시급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패션모델 한느 가비 오딜르,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우승자 캐스터 세메냐, 브라질 출신의 유도 선수 에디낸시 실바까지 딱히 접점이 보이지 않는 이들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인 ‘간성(間性·intersex)’이라는 것이다.

   간성은 염색체의 이상 혹은 호르몬 분비 과정의 이상으로 외부 생식기를 통해 성별을 판단하기 힘든 경우 혹은 하나의 몸 안에 남녀의 성기가 모두 존재하는 경우를 뜻한다. 남성과 여성 양쪽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태어나지만 성장 과정에서 한쪽으로 외형이 발달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는 남성의 성적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클라인펠터 증후군과 여성의 성적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터너 증후군이 있다.

   간성으로 태어난 이들은 영유아기에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위험과 부작용이 큰 성기 성형 수술을 받거나 간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편견과 혐오 속에서 자라곤 한다. 최근 이러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간성’인 사람들을 위한 법 제정이 세계 각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 독일, 출생증명서에 제3의 성 등록 허용

   독일은 2013년 11월부터 자녀의 출생증명서의 성별 칸을 공란으로 두고 있다. 독일의 가족법이 태어난 아이의 성별을 반드시 여성 혹은 남성으로 기재하지 않아도 되도록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조치는 2012년 2월 23일 독일 정부가 독일 국가윤리위원회로부터 “간성(間性·intersex) 성별을 지닌 사람이 의학적 견해에만 근거해 사회적 차별을 받아선 안 된다”는 권고를 받으면서 비롯되었다. 개정된 가족법의 목표는 자녀의 성별을 결정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부모들의 걱정을 덜어주고, 아이가 자라서 자신의 성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 8일, 독일 헌법재판소에서는 헌법이 두 개의 성만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기에 현재의 조치는 정당하지 않다고 밝히며 제3의 성인 ‘간성’을 새로운 성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독일 내무부가 2018년까지 관련 법안을 개정하라는 헌법재판소의 요구를 준수하겠다고 밝힘으로서 독일은 앞으로 자녀의 출생증명서에 제3의 성을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 내무부의 이 같은 결정에 제3의 성을 위해 활동하던 운동가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특히 간성이 또 다른 성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게 노력해 온 시민단체 ‘드리테 옵티온’은 ‘성별 분야의 작은 혁명에 가까워졌다’는 소감을 트위터에 남기기도 했다.

△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간성(間性)을 새로운 성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 연합뉴스

   ■ 네팔, 제3의 성 표기된 여권 · 주민카드 발급

   2007년 네팔 대법원에서 제3의 성을 가진 이들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신분증을 만들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 후 네팔 정부는 2012년 5월, 해당 신분증을 2주 후 발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록 2013년이 되어서야 제3의 성이 기재된 주민 카드가 처음 발급되었지만 이는 제3의 성을 가진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2015년 8월 10일에는 제3의 성이 표기된 여권이 네팔에서 처음 발급되었다. 해당 여권에는 남성을 지칭하는 M(Male)이나 여성을 지칭하는 F(Female) 대신 O(Other)가 성별 칸에 기재되어 있었다. 제3의 성이 표기된 여권은 네팔의 수준 높은 소수자 인권 정책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 마노지 샤히는 해당 여권의 발급을 두고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네팔 성소수자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

△ 2015년 8월 10일, 제3의 성을 뜻하는 O(Other)가 표기된 여권이
네팔에서 처음 발급되었다. ⓒ 깐티뿌르

   ■ 몰타공화국, 세계 최초 간성 아동의 성전환 수술 금지 법안 통과

   2015년 4월 1일, 몰타공화국은 세계 최초로 간성 아동의 성전환 수술을 금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법안은 간성으로 태어난 당사자의 동의 없이 진행되는 수술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하는 법안이었다. 해당 법안의 통과는 인구의 98%가 가톨릭 신자인 국가로서 2011년이 되어서야 이혼이 허용된 보수적인 국가 몰타공화국에서는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동안 간성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통상적으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부모와 의료진이 협의 하에 결정한 성별이 되기 위해 ‘정상화 수술(normalization surgery)’을 받아야 했다. 이 정상화 수술은 어릴 때에는 비교적 더 발달했던 성별이 성장 과정 중에 바뀔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어 왔고, 그 명칭 자체가 제3의 성을 하나의 성으로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비록 여전히 하나의 성별을 선택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긴 하지만 해당 법안이 통과됨으로서 간성으로 태어난 이들은 스스로의 성별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국제 인터섹스 인권단체 OII 유럽(Organisation Intersex International Europe)은 해당 법안이 통과된 후 ‘이번 법안은 유럽 국가들의 간성 인권을 위한 법 개정의 랜드마크’라며 환영 성명을 표했다.

△ 2013년 7월, Oll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제작한 간성을 상징하는 깃발
ⓒ Oll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등 최소 8개 이상의 국가들이 현재 제3의 성을 인정하여 여권과 신분증명서에 이를 기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에는 제3의 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 2014년, 현직 여경이 클라인펠터 증후군 확진 판정을 받은 생후 1개월 된 아들을 목 졸라 살해한 후 자살한 사건은 이러한 한국의 현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금년 들어 처음으로 간성인 사람들이 모여 단체를 이루고 행동에 나섰다. 바로 <한국 인터섹스 당사자 모임 ‘나선’>이다. 지난 2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나선’은 그동안의 고충을 털어놓지 못하며 살아온 간성 당사자들을 가능한 한 많이 만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국내 간성 인구를 파악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향후 ‘나선’은 간성으로 태어나 본인의 성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정상화 수술을 강요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나선’은 여성과 남성으로만 기재되는 주민등록번호의 성별 코드를 지우거나 제3의 성별을 뜻하는 코드를 추가하는 법안을 발의하도록 촉구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한국에서 울려 퍼질 ‘간성’의 목소리가 국내 간성 인권의 법제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 웹마

    18-01-01 03:45:41

    #수정사항 : 1. 문단 중복 삭제 2. 빠져있던 문단 추가를 하였습니다.

    가소은

    17-12-28 03:03:57

    세상에는 여자와 남자뿐만 아니라 많은 성이 존재하니까 "여성과 남성으로만 기재되는 주민등록번호의 성별 코드를 지우거나 제3의 성별을 뜻하는 코드를 추가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일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관심은 있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던 분야의 이야기인데 기사를 보고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기사라 많은 생각이 드네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이진

    17-12-21 15:53:16

    어렸을 때 성문화센터에서 '간성'을 처음 접한 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기사를 읽고 간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간성(間性·intersex) 성별을 지닌 사람이 의학적 견해에만 근거해 사회적 차별을 받아선 안 된다"는 말이 와닿네요.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하는 권력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기사였습니다. 한 학기 동안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