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를 규정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

젠더가 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젠더에 의해 규정돼야 한다.

   “입학할 땐 남자였는데, 여자가 된 친구예요.”

   성공회대 신학과 김 모 교수는 수업시간에 위와 같은 문장으로 아웃팅을 시작했다. 김 교수의 제자였던 트랜스젠더 여성 A씨는 자신의 트랜지션(성전환수술) 경험이 수업시간에 가십거리 내지는 ‘교육자료’로 활동되는 것에 동의했을까? 또한 A씨는 입학 당시 정말 남자였으며, 성전환수술은 A씨를 여자로 ‘만들어’주었을까?

△ 프라이드 플래그. 뜻은 ‘걸음걸음 긍정하고 모든 길에서 행복하길’이다.
조각보 사진전에서 전시했다.

   나는 보지를 갖고 있다. 부푼 가슴을 갖고 있다. 목젖과 자지가 없다. XX염색체를 갖고 있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2로 시작된다. 어릴 적부터 소꿉놀이와 인형 옷 모으는 걸 좋아했고, 운동이나 게임은 좋아하지 않았다. 긴 머리를 올려 묶는 걸 좋아했고, 짧은 치마를 입는 일이 즐거웠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수줍고 순수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한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성관계 시 삽입을 당하는 쪽이 좋았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나의 특성들은, ‘천상 여자’라는 말로 설명돼왔다.

   고등학교 1학년 즈음, 나는 내가 남자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트랜스젠더라는 단어를 모르던 때였다. 여전히 치마가 좋았고, 여전히 운동은 싫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남성으로 규정했다. 그러고는 내가 사람들로부터 여성으로 규정되는 이유, 아니, 그보다는 남성으로 규정될 수 없는 이유를 찾아 헤맸다. 내 사촌동생도 인형과 소꿉놀이를 좋아했는데. 어릴 적 누나들을 ‘언니’라고 불렀는데. 남자 동창 중에는 2차 성징 즈음 나보다 가슴이 커진 친구도 있었는데. 삼촌은 머리가 길고, 저기 어느 부족에서는 남자들이 치마를 입는다는데! 왜 나는?

   ‘내가 보지를 가지고 태어나서’

   만약 내가 자지를 갖고 태어났다면 내 유방은 ‘여성 유방’이 아닌 ‘여성형 유방’이 되었을 것이고, 목젖이 없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내가 여자여서 그렇다고 생각했던 모든 요소들이, 그냥 ‘여성스러운 성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자지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남성이 아니게 된 것이다.

   자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유보다도, 자지가 있고, 목소리가 충분히 낮고, 가슴이 작아야 남성으로 패싱(어떤 대상을 특정한 범주로 생각)된다는 점이 트랜지션을 부추겼다.

   성전환수술은 법적성별 정정을 위해서도 거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우리나라는 성별정정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담은 법조항이 없어서 판례로 정정가능성을 가늠하는 수밖에 없는데, 성전환수술 없는 성별정정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중에서도 ‘성기수술’을 하지 않으면 성별정정의 벽은 수십, 수백 배 더 높아지게 된다.

   나는 결국 성전환수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우선은 호르몬 치료가 필요했다. 호르몬치료를 해주는 병원은 몇 곳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마저도 정신과 진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F64.0'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검사와 진단을 받는 데 총 30만 원이 들었다. 정신과 의사는 나의 유년기에 대해 물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치마를 좋아했다고 말하면 진단을 해주지 않겠지?’

   나는 10여 분에 걸쳐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하고 남성 또래집단에 속해왔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겉으로 보기엔 되게 여성스러운데.......’라는 의사의 혼잣말에 불안해하며, 나의 ‘남성스러움’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나는 호르몬 치료를 앞두고 수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내가 트랜지션을 하지 않아도 모두가 나를 남성으로 대해준다면 내가 트랜지션을 할 이유가 있을까. 자지와 평평한 가슴, 튀어나온 목젖이 간절하지 않은데, 그리고 나는 임신을 하고 싶은데. 내 보지와 자궁, 가슴을 남성의 그것으로 인정해줄 수는 없는 걸까.

△ 나를 규정할 권리는 사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

   젠더가 몸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젠더에 의해 규정돼야 한다. 나의 몸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몸을 사유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보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의 성별이 결정되길 원치 않는다. ‘젠더’는 실존한다. 내가 어떠한 젠더(*또는 젠더가 없는 사람)로 규정되는가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는 사회로부터 어떤 젠더로 규정되고, 어떤 범주에 속할 것인지를 정할 자유가 있다. 어떠한 젠더에 대한 갈망이 젠더 간의 불균형한 권력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회는 개개인이 자신의 젠더를 결정하는 것을 막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본인의 성별을 의심할 여지조차 없이 지정된 성별에 갇히고, 특정한 관계와 행동을 요구당하는 사회에 균열을 내야 한다. 그리고 되찾아야 한다. 나를 규정할 권리를.

  • 문이진

    17-12-21 16:16:46

    '나를 규정할 권리'라는 말이 크게 와닿네요. 기고 고맙습니다.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