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선수대리인 제도, 선수와 에이전트 모두에게 독

구단과 법률가들의 독점
가능성 차단해야

   KBO(한국야구위원회 Korean Baseball Organization)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사 선수협)는 지난 9월 26일, 3차 이사회에서 오는 2018년에 선수대리인(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하기로 확정했다. 선수협의 자격시험을 거쳐 공인된 대리인들과 구단 간의 계약을 합법화 해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것이 요지이다. 이전에도 대리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KBO는 2001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명령에 따라 2002년부터 에이전트(선수대리인과 혼용하고 있지만 본 글에서는 현 선수대리인 제도 이전의 협상 대리인들로 한정)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당시 KBO 규약 제 30조 ‘대면계약’에서는 ‘구단과 선수가 계약을 체결할 때는 구단 임원 또는 위원회 사무처에 등록된 구단 직원과 선수가 대면해서 직접 계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에이전트가 계약을 맺는 행위는 물론 에이전트를 대동하는 것마저도 규약 위반이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선수들은 매년 연봉조정이나 FA 협상에서 본인들의 가치를 직접 주장하며 구단과 싸워야 했고, 대부분 을의 위치에 있었다.

△ 올해 FA를 맞은 손아섭과 강민호와 민병헌(시계 반대 방향)은
같은 에이전트의 고객이다. ⓒ 미디어펜

   하지만 소위 ‘특급선수’로 분류되는 일부 선수들은 저마다 에이전트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들은 과거 FA계약의 후일담에서 종종 등장했다. 당장 금년 FA계약을 체결한 강민호(삼성라이온즈)와 손아섭(롯데자이언츠), 민병헌(롯데자이언츠)도 한 에이전트의 고객이었음이 밝혀졌다. 인맥과 지연으로 특급선수들을 불법적으로 확보한 에이전트의 힘이 강력해지자 구단과 선수와 에이전트, 협회가 모두 규약을 위반하고 불문율에 부쳐온 것이다.

   대리인 제도가 도입되면 선수가 구조적인 을에서 탈피하고, 불법적인 에이전트의 활동을 방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작금의 선수대리인 제도 역시 또 다른 구조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양태라는 데 있다. 선수협에서 10월 13일 배부한 선수대리인 규정안 제7조 ‘자격시험’에 따르면, KBO의 규정은 물론이고 국민체육진흥법의 벌칙규정, 기타 KBO가 지정하는 법률상식까지가 선수대리인 자격시험의 과목에 포함된다.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 선수대리인 제도가 시행되는데 자격시험이 12월 22일이기 때문에 시험을 준비할 여유가 없다. 게다가 44만원이라는 비싼 수험료와 전문성이 필요한 법률 과목은 더욱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다.

   선수대리인 규정안에 따르면, 선수대리인은 KBO, 구단, 선수협의 상근·비상근직을 겸임하면 안 된다. 하지만 형식상 구단과 분리된 모기업소속의 법률가들이 업계에 뛰어들어 구단 측의 갑질을 더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현 제도를 바로 시행하는 것은 선수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선수대리인 제도를 도입하는 본 취지를 손상시킨다.

   ‘기존의 불법이지만 횡행하는 행위를 양성화하여 부정을 바로잡고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하겠다’ 어디서 들어본 말 같지 않은가?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언급했던 ‘지하경제 양성화’와 유사한 모양새이다. 그러나 11월 28일 <한겨레>는 지하경제 양성화의 일환이었던 ‘미신고 역외소득 재산 자진신고제도’를 통해 삼성 이건희 회장의 은닉계좌가 사실상 사면 받았음을 밝혔다. KBO역시 본래 갑이었던 구단 측이 남용할 수 있는 현 선수대리인 제도를 정비해, 제도 도입의 본 취지를 손상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 문이진

    17-12-21 21:04:25

    지하경제 양성화ㅋㅋㅋ 잘 읽었습니다. 문기의 야구사랑 충성충성^^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