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정상화, 외주불공정부터 해소해야

외주 PD의 잇따른 죽음,
방송사 책임 크다

   2017년 11월 13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싸움이 끝났다. MBC의 파업 이야기다. 73일간의 싸움 끝에 MBC를 타락시킨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는 김장겸 사장이 해임되었다.

   투쟁에 참여했던 구성원들은 MBC를 정상화 하겠다는 굳은 각오를 가지고 업무에 복귀했다. 노조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라디오 아나운서 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변창립 아나운서는 <시선집중>복귀 방송 오프닝에서 “돈과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방송, 강자보다는 약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송,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방송으로 갚아나가겠다”고 말했다.

   참 멋진 말이다. 역시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일어선, "즈엉의로운" MBC 파업자답다. 그러나 재밌게도 그들의 투쟁은 위 대사와 달리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외면하고 있었다. 바로 ‘방송사-외주제작사 간 불공정 거래’이다.

   2016년 10월 26일, tvN의 TV 프로그램 <혼술남녀>의 이한빛 PD가 죽었다. 사인은 자살, 아니 ‘사회적 타살’이었다. 고(故) 이한빛 씨는 조연출 PD였지만 촬영 준비, 촬영장 정리, 정산, 편집 등 본인의 업무 이외의 일도 수행하며 55일 간 이틀 정도만 쉴 정도로 끔찍하게 혹사당했다. 첫 방송 직전, 제작팀이 작품완성도가 낮다는 이유로 계약직 다수를 해고해 일손이 부족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결국 그는 과도한 노동과, 이를 비정규직 스태프에게도 강요해야하는 현실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7년 7월 14일에는 박환성, 김광일 다큐멘터리 PD가 죽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촬영 후 이동 중이던 그들은 졸음운전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와 부딪혀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머나먼 오지, 가로등도 없는 밤길을 오직 단 둘이 이동했던 것은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였다. 힘겹게 받아낸 정부지원금의 40%를 EBS가 간접비 명목으로 ‘삥’뜯어갔기 때문에 제작비를 아껴야만 했다. 그렇다. EBS가 그들을 죽였다.

   세 PD는 방송사에게 ‘죽임당했다’. 이들을 죽인 방송사의 만행은 결코 tvN이나 EBS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KBS, MBC, SBS 등 외주제작 편성 비율이 50%를 넘어가는 방송 생태계 전체에서 일어나왔던 일이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주요 방송사의 외주계약서에 따르면, MBC 아침 프로그램은 2006년 시작당시로부터 26번의 계약서 변경과 실질적 제작비 규모 감소가 있었다. KBS는 한 프로그램의 최초제작비 1800만원을 780만원까지 삭감하다가 결국 일방적으로 폐지했다.

   이런 악습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 역시 아니다. 정권과 상관없이 방송사의 갑질은 10년, 20년 전부터 있었다. 희생된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갑의 입장인 방송사 소속 사람들은 누구도 문제 제기하지 않았다. 이번 MBC 정상화 파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방송사가 ‘관행’의 이름아래 자행해온 일방적 노동조건 변경과 고용 해지, 경비 미지급, 급여 체불, 폭언·성희롱은 ‘정상’적인 상황이었나? 독립제작자가 피땀 흘려 만든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방송사가 가져왔던 것은 문제가 아닌 것인가?

   정권이, 사장이 바뀐다고 해서 방송사의 갑질이 사라지지는 것은 아니다. MBC의 모든 구성원들은 독립제작자들에 대한 방송사의 갑질에 대해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열어준 작은 승리에 자만하지 말고, 방송사의 갑질과 자신들의 침묵을 부끄러워하며 불공정거래의 핵심적 원인을 인정, 법과 제도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 사장 교체를 위해 아직 파업 중인 KBS도, 그렇지 않은 모든 방송사의 구성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영)방송사의 구성원들은 방송사-독립제작자간 불공정거래를 타파하지 않고 ‘방송 정상화’를 말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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