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힙합의 비겁함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는
래퍼들의 swag에 부쳐

   지난 11월 30일, 국내 힙합 음악 레이블 ‘VMC’의 리더 딥플로우가 ‘한남 선언’을 했다. 선언의 배경에는 ‘애호박 사건’으로 화제가 되었던 유아인의 트윗 설전이 있었다. 딥플로우는 유아인의 트윗에 ‘좋아요’를 누른 뒤, 이에 반발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제가 유아인 씨 글에 좋아요를 누른 걸 보고 "너네 표랑 시디 팔아주는 게 대부분 여자인 걸 알고 이러냐"라며 협박하는 분들과는 영원히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아티스트를 검열하지 마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사이의 논쟁은 그리 낯설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가 들어왔던 한국의 힙합 음악은, 자못 숭고한 ‘표현의 자유’라는 말을 부르짖을 정도로 당당하게 내세울 만한 것이 못 된다.

   힙합 가수 송민호는 지난 10월 23일 발매된 에픽하이의 노래 <노땡큐>를 통해 “mother fucker만 써도 이젠 혐이라 하는 시대, shit”이라고 부르짖었다. 그가 얼마나 큰 억울함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mother fucker’가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고서야 그의 억울함에 공감하기는 힘들다. 이어 같은 곡에서 힙합 가수 사이먼 도미닉은 다음과 같은 가사를 내뱉었다. “이번 애인은 의사였으면 해, 정신병원의. 틈만 나면 한 눈 팔아 나는 5급 장애죠”

   이러한 혐오 표현들의 저변에는 힙합 특유의 ‘swag’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사전적으로 ‘swag’은 ‘약탈’ 또는 ‘전리품’을 뜻하지만, 힙합 문화에서의 ‘swag’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swag’이란 힙합 문화의 가치체계를 공유하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개념으로, 명확한 본뜻은 없다. 다만 "swag"이라는 개념 안에 내포된 공통적인 태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당당함, 직설’ 당당하게 자신의 돈, 향락, 멋진 애인을 자랑하고, 싫은 것은 직설적으로 욕하며 누가 뭐라 하던 자기 길을 가겠다는 ‘마이 웨이’. 딥플로우가 말한 ‘표현의 자유’ 역시 이러한 "swag"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당당함. 직설적 표현. 뭐, 나쁘지 않다. 다만 그들의 직설, 즉 "swag"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내포할 때 힙합은 비겁해진다.

   힙합 가수 더콰이엇은 다음과 같은 가사를 쓴 적이 있다. “날 보면 심지어 멀쩡한 남자도 게이로 변해” 그의 저의는 알겠다. 상기 가사를 비난하는 사람치고 그가 가사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난 멋있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성소수자를 ‘멀쩡하지 않은’ 사람으로 묘사했다는 사실 역시 명백하다.

   이후 더콰이엇은 한 네티즌의 가사 지적에 대해 “자신은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입장”이라는 대응 트윗을 내놓으면서도 “자신의 음악적 표현에 대해 딱히 변명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많은 경우 "swag"은 이런 식이다. 힙합 가수들은 오랫동안 힙합 문화 내부에서 통용되어왔던 표현 방식이라는 이유로 혐오적 표현을 고수한다.

   딥플로우의 ‘한남 선언’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그는 힙합 음악에서는 흔하게 사용되어왔던 표현인 ‘mother fucker’라는 말에도 ‘혐오’라고 말하는 ‘프로불편러’들에게 그럴싸하게 천명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내 길을 간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와 X발, 딥플로우 마이웨이 한남스웩 개멋있다. 진짜 래퍼”라며 경탄을 표했다. 그러나 힙합 마니아들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swag’이라는 판타지 뒤에 숨는 무책임한 태도가 얼마나 비겁한지를.

  • 문이진

    17-12-21 21:03:17

    정말 밤고구마 100개 연속으로 먹고 들이킨 사이다처럼 시원한 글입니다.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