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선수들 앞길 막는 이적제도, 구단의 권력행사 수단인가?

선수에게 가혹한 계약조건,
이제는 선수 노동권도 보호받아야

   ■ KBO의 현행 FA제도, 갈 곳 없는 미아 선수들

   LG 트윈스는 지난달 30일, 보류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그 안에 베테랑 타자 정성훈(37)의 이름은 없었다. 정성훈은 올해 115경기에 출전해 3할1푼2리의 타율을 기록하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냈다. 1루수나 지명타자가 약한 팀에서는 충분히 탐 낼만 한 선수다. 정성훈은 올해 초 LG와 1년 총액 7억원의 FA(Free Agent, ‘자유계약선수’를 의미하며 원 소속 구단 외의 구단과도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계약을 맺었다. 원래 FA는 9년치의 등록 일수(연 145일 기준)를 채워야 하지만 선수가 FA 권한을 재취득하려면 4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성훈을 영입하려는 구단은 연봉협상만 거치면 된다.

   정성훈의 상황에서 조건을 조금만 비틀어보자. 만약 정성훈이 FA자격을 취득한 선수였다면 정성훈을 영입하려는 구단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는 FA의 보상 문제 때문이다. 2017 KBO 규약 172조에 따르면 FA를 영입하는 구단은 원 구단에게 선수의 당해 연도 연봉의 200%와 보호명단 20인 외 선수 1명 또는 당해 연도 연봉의 300%를 지급해야 한다. KBO의 1군 엔트리는 25명이다. 보호명단이 20인밖에 안되기 때문에 원 소속 구단은 바로 1군에 등록가능한 선수를 선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 37세로 선수생활의 끝을 달려가는 정성훈을 영입하기 위해서 돈과 다른 1군 선수를 내주는 것을 투자라 할 수 있을까. 선수들의 자유로운 이적을 위해 만들어진 FA제도가 오히려 발목을 잡아, 어느 팀에도 갈 수 없는 ‘FA미아’를 만든다.

   ■ FA되면 은퇴준비?

   FA취득 요건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2017 KBO규약 162조에 따르면 FA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9년치의 1군 등록 일수(연 145일 이상)를 채워야 한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데뷔한 선수, 군 면제를 받지 못하고 활동한 선수는 필연적으로 FA신분이 되었을 때 이미 노쇠화를 걱정해야하는 나이가 된다.

△ FA 계약 후 첫 시즌인 2018년엔 만 36세가 되는 채태인 ⓒ 엠스플뉴스

   현행 FA제도 하에서 20대에 FA가 되는 방법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군에 데뷔해 주전 선수가 되어서, 국가대항전에도 출전할 정도로 특출한 성적을 내고 대회에서 메달을 수상해 군면제를 받아 9년 동안 주전선수로 활동하는 수밖에 없다. 현대 스포츠에서 선수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고는 해도, 구단들이 신체적 전성기가 지난 나이대에 접어든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주전급 선수와 돈을 내어준다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원 소속구단은 시장 상황에 따라 독점계약권을 얻은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벌어져, 선수가 구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넓게 보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 K리그 이적제도 역시 문제가 있다.

   국내 축구 K리그의 FA제도는 어떨까? FA자격 취득 요건은 간단하다. 구단과 계약 만료가 되는 시점에 FA가 되는 방식이다. K리그 역시 이적시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2005년 이전 신인들에게 많은 계약금을 안겨주어야 했던 제도화 당시의 상황에 기인하고 있었고, 2005년 이후 신인드래프트가 집행되면서 05년 이후 입단 선수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적 계약 기한에 있다. 통상적으로 구단과 선수는 계약 만료 1년 전에 계약을 마무리한다. 시간에 쫓겨 불합리한 결과를 도출할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유럽에서는 계약만료 6개월 전까지 원 소속팀과 재계약하지 않을 경우 타 팀과 이적 협상을 가능하게 규정한 ‘보스만룰’로 자유로운 이적을 보장한다. 하지만 K리그는 계약만료 5개월 전부터 원 소속팀 임의의 이적 추진을 제한할 뿐 FA선수와 타 팀과의 이적 협상을 제한하고 있어 역시 선수에게 불리한 FA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 다른 리그는 어떠한가?

   그렇다면 해결방법을 찾을 순 없을까? 가장 가까운 축구리그인 일본의 J리그는 2009년 시즌부터 FA이적료를 폐지했다. J리그의 선수 노동조합인 선수협의회에서 2008년 각 구단들과 J리그 사무국에 정식으로 폐지 요청을 하자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당시 J리그 선수협의회는 “계약 기간이 끝나면 이적료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제 축구계의 룰을 따라달라”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아직 국내 K리그에는 선수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조직도 없는 실정이다.

△ 선수들에게 연설하고 있는 마빈 밀러 ⓒ Baseball-in-Play.com

   가장 거대한 야구 리그인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Major League Baseball Players Association(이하 MLBPA)는 노동운동가였던 마빈 밀러를 필두로 한 여러 전문가들을 내세워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했다. MLBPA는 대통령의 중재에도 리그의 결승전인 월드시리즈를 보이콧하고, 시즌 중 파업을 감행할 정도로 강성한 노조이다. 이들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연봉조정신청과 FA제도의 확립이 있다. 그 외에도 MLBPA는 선수의 권한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을 만들어냈다.

   ■ 서비스타임과 QO, 갑질과 현질을 막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KBO리그의 1군 등록일수와 같은 개념인 ‘서비스 타임’에 따라 계약 방식이 달라진다.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선수의 서비스 타임이 3년 미만인 경우 구단이 정해주는 연봉을 받고, 3년을 넘게 되면 연봉조정이 가능하다. 이런 규정을 악용하여 1군 승격을 늦추는 구단의 갑질을 막기 위해 2년차 선수들 중 서비스 타임을 일수로 계산하여 상위 22%내의 선수들에게 연봉조정기회를 주는 ‘슈퍼 2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선수가 서비스 타임을 5년 채울 경우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갖게 되고, 6년을 채우면 FA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워낙 시장이 크기 때문에 대형 트레이드도 많이 성사되는 메이저리그의 특성상, 서비스 타임을 10년 이상 채우고 한 팀에서 5년 이상 활동한 선수는 ‘프랜차이즈 스타’로 취급해 트레이드 거부권을 지니게 된다. 서비스 타임을 기준으로 계약형태를 변경해, 구단의 갑질을 막는 것이다.

   FA의 경우, KBO리그와 달리 보상금이나 보상선수는 없다. 자유계약 대상자이니 시장의 자유에 맡긴다는 논리다. 그러나 원 소속구단이 협상을 시도했을 경우 지명권을 보상으로 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원래는 선수의 등급을 나누어 차등 보상을 받는 제도였지만, 등급을 나누는 기준을 정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그러자 구단에서 FA선수에게 연봉 상위 125명의 평균 연봉을 지급하는 1년 단위의 계약(이를 퀄리파잉 오퍼, 이하 QO)을 제안할 수 있게 하고, QO를 받은 선수에 한해 타 팀에서 FA선수를 영입할 때 지명권을 보상해야 한다. 또한 구단의 재정 규모에 따라 보상에 차이를 두는 형식으로 대형 구단과 중소 구단 사이에 균형을 맞추고 있다. 물론 이렇게 까지 규정을 만들고 고쳐온 데에 수많은 투쟁과 협상이 있었음은 당연하다.

△ 선수들에게 연설하고 있는 마빈 밀러 ⓒ Baseball-in-Play.com

   ■ 한국도 바뀔 때가 됐다

   KBO리그에도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Korea Professional Baseball Players Association, 이하 선수협)가 존재한다. 그러나 선수협은 선수들의 보편인권을 보장하기보다는 에이전트 공인과 외국인 선수 엔트리 재검토 등 대중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권에 치중한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지난 4월 ‘메리트’논란으로 이호준 선수협회장이 사퇴한 뒤 선수협회장은 지금까지 공석으로 남아있다.

   처음 국내 FA제도에 보상선수라는 개념이 도입된 이유는 자금력이 있는 대형 구단이 돈으로 선수를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행위, 속칭 ‘싹쓸이’를 막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최근 국내 FA시장을 보면 다양한 팀이 대형 FA 계약을 하고 있고, 각 구단들의 경영 추세도 모기업의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된 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변화하고 있다. 현행 이적제도는 선수들의 이적을 어렵게 해, 선수의 노동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있다. KBO리그는 100억 FA시대에 돌입했고, 일본과 용병을 두고 머니게임을 한다. 보다 넓게 보면 국내 스포츠 선수들의 해외 진출도 많아지는 등 전체적인 시장 규모도 성장했다. KBO에서는 총재와 선수협회장이 교체되고, K리그는 권오갑 총재의 2년차 체제를 맞는다. 시장 규모의 성장만이 아닌 제도의 선진화도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다.

  • 웹마

    18-01-01 03:49:12

    #수정사항 : 문단 소제목(한국도 바뀔 때가 됐다)에 ■ 추가하였습니다.

    문이진

    17-12-21 15:33:52

    스포츠 팀은 기사를 통해 스포츠 문외한인 저에게 새로운 정보를 한아름 안겨주었어요! 처음엔 편집장님이랑 스포츠 체계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서 인터넷에 'FA제도' 같은 단어를 검색해보며 애를 썼는데, 이제는 너무 재미있네용ㅋㅋ 그동안 '스포츠 기사'라고 하면 경기 결과 보도와 경기 사진만 생각했었는데 이젠 여러분의 기사를 먼저 떠올릴 것 같아요! 기획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운동선수의 노동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어 좋았습니다. 스포츠팀 조문기 기자님, 오승석 기자님, 최태양 기자님 수고 많으셨어요 :)